한국에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민주주의의 후퇴 과정에서 정부가 문화예술인을 비밀리에 분류·통제한 ‘블랙리스트’ 정책이 영화산업 종사자의 경력을 어떻게 훼손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제시됐다다. 누가, 언제, 무엇을, 왜, 어떻게 시행했는지를 정리하면, 이 사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국가정보원과 문화부 등 행정부가 비판적 인물을 특정하고, 직·간접적 방식으로 활동 기회를 축소시키면서 표현의 자유를 체계적으로 손상시킨 사례임을 보여준다. 특히 비가시적 직군일수록 타격이 심해, 민주주의 후퇴가 문화산업 노동시장에 불평등한 충격을 가져왔다는 점이 드러난다.
한국 영화산업은 1990년대 이후 시장 확대와 사회적 개방성 확대로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이러한 성장 기반이 2008년 이후 민주주의 질 저하와 함께 급격히 위축되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2012년 대선을 전후해 정부가 체계적으로 문화예술계의 비판적 인물을 식별한 뒤, 이들을 포함한 비밀 목록을 작성하여 고용, 창작 지원, 상영 기회 등에 직·간접적으로 제약을 가한 사실이 정부 문건 및 조사보고서에서 공식 확인되었다. 이 연구는 해당 블랙리스트가 단순한 정치적 사찰을 넘어 산업 전체의 자기검열을 유발한 점을 핵심 문제로 제시한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산업 종사자들이 위험 회피를 위해 블랙리스트 명단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배제하는 관행이 확산되었고, 이는 전체 생태계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저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연구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BIS) 데이터와 블랙리스트 명단을 결합해 구축한 패널 자료를 이용하여, 블랙리스트 등재 여부가 영화 종사자의 연도별 참여 작품 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차분의 차분(DiD) 모형을 적용한 결과, 블랙리스트 등재자는 2012년 이후 비등재자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적은 수의 영화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 초기일수록 이 충격은 더욱 컸으며,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제작직군 등 비가시적 직업군에서 감소 폭이 크게 나타났다. 연구는 이를 정부의 직접적 조치뿐 아니라 산업 내부의 광범위한 자기검열이 촉발한 누적적 경력 손상으로 설명한다.
또한 블랙리스트의 비밀성과 정치적 의도성이 결합되면서 민주주의의 ‘대각적 책임성(diagonal accountability)’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도 제시된다. 기존 연구들이 수평적·수직적 책임성 약화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후퇴를 설명했다면, 이 연구는 문화 부문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억압이 민주주의 침식의 핵심 과정임을 강조한다. 정부가 공적 이미지 관리와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비판적 문화인을 체계적으로 배제할 경우, 이는 시장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는 ‘보이지 않는 피해’의 규모를 지적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단순히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한 종사자도 다수 존재했으며, 이는 비공개적 억압 체계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직업적 기회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차단될 때, 산업 종사자들은 더욱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산업 전체의 창의적 다양성은 급격히 감소한다. 민주주의 후퇴가 단순히 정치제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경제의 심층 구조를 왜곡한다는 점을 이 연구는 강조한다.
이 연구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단순한 과거의 문화정책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 후퇴가 문화산업 종사자들에게 어떠한 실질적 피해를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결론짓는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는 표현의 자유 보장과 문화산업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며,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의 지원 사업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법적 장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더불어 블랙리스트와 같은 비공개적 억압을 방지하기 위해 심사 과정의 투명성, 기록 공개, 그리고 독립적 감독기구의 상시적 감시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제기된다. 민주주의가 후퇴할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영역이 표현의 자유임을 감안하면, 입법부는 문화 분야를 민주주의 보호의 핵심 영역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논문: https://doi.org/10.1080/13510347.2024.2343103
유튜브:
https://youtu.be/ya7iZf2C4VM
카카오톡 채널:
http://pf.kakao.com/_lUxoen
한국 대중문화에 드리운 민주주의 후퇴의 그늘… ‘블랙리스트’가 남긴 구조적 피해
엄기홍 기자
|
2025.12.10
|
조회 19
표현의 자유 억압이 영화산업 종사자의 경력에 미친 영향을 실증 분석한 연구
출처: Democratization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