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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외교정책 인식, 과연 정파에 따라 다를까?

엄기홍 기자 | 2025.05.04 | 조회 78

정치적 이념과 정당 선호가 외교 인식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 분석

출처: 최현진

출처: 최현진

정치적 양극화가 한국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는 오늘날, 외교정책이라는 영역마저도 정쟁의 연장선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전통적으로 외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가 이익이라는 대의 아래 협력이 중시되는 분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정치의 극단화가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경희대학교 최현진 교수는 정치적 이념과 정당 선호가 한국인의 외교정책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를 발표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동아시아연구원(EAI)의 2022년 여론조사와 통일연구원(KINU)의 2018년부터 2023년까지의 통일의식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인의 외교정책 인식이 정치적 이념과 정당 선호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 분명 일부 외교 이슈에서는 정파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상당수의 주요 사안에서는 오히려 정파를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초당적 공감대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입니다. 진보와 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한국 국민은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미국이 중국보다 더 중요한 파트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신뢰는 전반적으로 낮지만,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수용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협력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대북 제재의 필요성과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서도 정파 간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불신과 안보 불안이 국민 전체에 공통적으로 퍼져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 설정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강경한 접근을 가능케 할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안이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대북 경제 및 인도적 지원 문제는 여전히 진보와 보수 간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분야입니다. 진보 성향의 시민들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인정하는 반면, 보수 성향 응답자들은 안보와 제재를 우선시하며 지원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정치적 이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변화는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의 수렴입니다. 전통적으로 보수 진영이 핵무장에 더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나, 최근 조사에서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이에 대한 찬성 비율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점차 낮아지는 가운데, 독자적 안보 전략으로서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핵무장 문제는 단순히 정파 간 대립의 대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국가 전략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연구는 또한 외교정책에 있어 과도한 정치화의 위험성도 경고합니다. 정권에 따라 대외정책 기조가 급변하게 되면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와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한국 외교의 연속성과 안정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며, 특히 동맹국들과의 협력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교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초당적 합의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어떤 외교적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조사에 따르면, 모든 정치 성향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제한에 대해선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정파를 넘어 실용주의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디커플링 전략에 무조건적으로 동참하기보다는, 한국의 국익에 기반한 유연하고 다층적인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통일 문제 역시 정치 성향에 따라 인식의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이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안보 환경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통일 담론이 점차 실용주의적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최현진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첫째, 외교정책에서 불필요한 정쟁을 줄이고, 초당적 공감대를 중심으로 일관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한미일 협력의 경우, 정권의 이념과 무관하게 지속적인 협력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합니다. 셋째,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은 신중한 전략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며, 넷째, 핵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정파적 대립을 넘어서서 국가 생존 전략의 차원에서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합니다.

정치적 양극화의 흐름 속에서도 외교정책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초당적 합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국민 다수는 감정이 아닌 전략에 기반한 외교를 원하고 있으며, 이는 정치권이 숙고해야 할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외교는 단순히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기술을 넘어서,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전략적 행위입니다. 이제는 정파를 초월한 냉철하고 일관된 외교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https://youtu.be/ASl7aBnxqA0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