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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군사정권도 지원하는 이유는?

엄기홍 기자 | 2025.09.16 | 조회 59

OECD/DAC과 다른 경로 선택한 한국…중간 민주주의 국가와 군사정권에 집중

출처: Korea Observer

출처: Korea Observer

한국은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이후, 민주주의 지원 국가로의 위상을 강화해왔다. 특히 2019년부터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16번 항목을 기준으로 삼아 평화·정의·제도 강화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원조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원조 방향은 다른 DAC 국가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OECD/DAC은 군사정권을 회피하고 풀뿌리 시민사회 중심으로 지원을 확산하는 반면, 한국은 군사정권 국가에도 적극적 지원을 하고, 소수의 국가에 집중적인 재정 원조를 집행해왔다. 이 같은 정책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 연구는 한국과 OECD/DAC 회원국들이 민주주의 원조를 어떤 국가에 어떻게 배분하는지 비교 분석한다. 분석 결과, 두 집단 모두 민주주의 수준이 중간인 국가에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역U자형 분포"라 한다. 다시 말해, 완전한 독재국이나 완전한 민주국보다는, 제도화가 덜 된 중간 단계의 민주국가가 주요 수혜처다. 이는 민주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점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방식은 다르다. OECD/DAC 국가는 민주주의 관련 프로젝트의 ‘숫자’에 방점을 둔다. 다양한 국가와 주체에게 적은 규모라도 폭넓게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들은 시민사회 조직, 언론 독립성, 표현의 자유 증진 등 지역사회 기반의 하향식 지원을 강조한다.

반면 한국은 프로젝트 숫자보다 ‘금액’에 초점을 맞춘다. 즉, 소수 국가에 대규모 재정 지원을 집중하여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이나 정부 능력 향상에 중점을 둔다. 이는 한국이 과거 군사정권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한 역사적 경험과, 그 과정에서 국제 원조의 도움을 받은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은 군사정권 체제에 속한 국가에도 민주주의 원조를 제공하며, 이들 국가가 점진적으로 민주화될 수 있다는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OECD/DAC 국가들이 군사정권 국가에 민주주의 원조를 거의 배분하지 않는 반면, 한국은 군사정권 국가에 가장 많은 재정 원조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집행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의회제 국가보다 군사정권, 개인독재, 당국주의 체제 국가에 더 많은 민주주의 원조를 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이는 국제 기준상 비효율적인 원조라는 평가와는 대조되는 전략이다.

이 연구는 분석 모델을 통해, 한국과 OECD/DAC의 민주주의 원조 배분이 각각 어떤 요인에 의해 설명되는지 통계적으로 검증하였다. OECD/DAC는 민주주의 수준이 중간인 국가일수록 프로젝트 수가 많았으며, 군사정권 국가에는 상대적으로 원조가 적었다. 반면, 한국은 민주주의 수준이 중간인 국가일수록 재정 지원 금액이 많았고, 군사정권 국가에 가장 많은 원조가 집중됐다.

이 같은 차이는 두 집단이 ‘민주주의 효율성’을 판단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OECD/DAC는 표현의 자유, 언론 독립, 시민사회 참여 등 ‘정치적 다양성’ 증진을 원조의 핵심 효과로 간주한다. 반면 한국은 제도개혁, 공공행정, 전자정부 등 ‘국가 기능 강화’를 우선적인 원조 효과로 판단한다.

이 연구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낸다. 한국과 OECD/DAC 모두 ‘민주주의가 너무 높은 국가’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원조를 한다는 점이다. 이미 민주화가 안정된 국가보다는, 제도화가 불완전한 국가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는 정치적 개입보다는 기능적 안정화, 그리고 자국의 경제적·외교적 전략에 따라 대상국을 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OECD/DAC의 ‘인권 기반 접근’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은 OECD/DAC 내에서 2022년 기준 14번째로 많은 원조를 집행한 중견 공여국이다. 그러나 그 전략은 전통적인 서구 공여국과는 다르다. 과거 수원국으로서의 역사, 군사정권 경험, 급속한 경제성장 모델은 한국이 민주주의 원조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형성해왔다.

이 연구는 한국이 앞으로 민주주의 원조 전략을 고도화하려면, 국가 중심의 대규모 지원 외에도 시민사회와 언론, 인권 분야로 지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중간 수준 민주국가와 군사정권 국가를 대상으로 하되, 단순한 행정 역량 강화에 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포용성 확대를 위한 하향식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원조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시험대에 놓여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 16이 요구하는 ‘포괄적이고 책임 있는 제도 강화’라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려면, 민주주의 원조의 내용과 방법 모두에서 보다 세심한 전략 재구성이 필요하다.

논문: https://doi.org/10.29152/KOIKS.2025.56.3.443
유튜브: https://youtu.be/RmxDPBdwv5U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