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언제부터 제재를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무기’로 여기기 시작했을까? 2021년 「반외국제재법」 제정 이후, 중국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을 겨냥한 다양한 제재 조치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중국의 제재가 단순한 보복이나 압박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를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중국은 오랫동안 제재에 비판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서방이 가한 제재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제재를 서방 패권의 억압적 도구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고,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외교 노선은 더욱 단호해졌다. 특히 2014년부터 2023년 사이, 중국은 비공식적인 경제보복에서 공식적인 법제화까지 제재를 외교 수단으로 본격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전환의 핵심에는 ‘제재의 상징적 기능’이 있다. 이 연구는 중국의 제재가 실제로 상대국의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국제사회에 스스로를 책임감 있고 유능한 강대국으로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제재는 무언의 외교 메시지이자, ‘국제무대에 던지는 자기소개’인 셈이다.
중국의 제재는 경제적 충격을 주기보다 ‘가시성 높은 상징물’을 타깃으로 삼는다. 대표적 사례가 2017년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한국에 대한 보복이다. 중국은 관광, 연예, 유통 등 감성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산업을 중심으로 비공식 제재를 가했다. 이는 군사적 결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 중국 정부의 불만을 대내외에 명확히 각인시키는 행위였다.
공식 제재 역시 유사한 논리로 작동한다. 「반외국제재법」 제정 이후 중국은 특정 정치인, 기업, 단체를 대상으로 입국금지, 자산동결 등 맞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재 대상은 중국 경제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집단이었다. 따라서 제재가 실제 정책 전환을 유도하기보다는, '중국도 이제 강대국처럼 제재를 공식화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갖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메시지를 분석하기 위해 중국 외교부 공식 발표와 국영 영문매체(China Daily, Xinhua 등)의 기사 130건을 질적·양적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제재 담론에는 크게 두 가지 상징적 목표가 드러났다. 하나는 ‘중국의 강대국 준비 완료’를 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먼저 ‘강대국 준비 완료’ 프레임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제재를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제재를 법제화하면서 국제규범에 부합하려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특히 “중국도 미국처럼 제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부각시켰다. 또한 자국 내 여론의 지지와,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의 외교적 지지를 활용해 국제적 정당성도 확보하려 했다.
다음으로 ‘이미지 재구성’ 프레임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중국은 서방 제재를 위선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자국 제재는 방어적이고 법적 정당성을 갖춘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스스로를 ‘도발에 맞서는 신중한 응징자’로 묘사하고, 서방을 ‘국제규범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위선적 패권국’으로 그린다.
이러한 서사는 ‘타이완, 홍콩, 신장’ 등 핵심 주권 이슈에 더욱 집중된다. 중국은 이 지역들에 대한 서방의 비판이나 개입을 ‘내정간섭’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제재는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분석된 텍스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주권’, ‘안보’, ‘정당성’이었다.
결국 중국의 제재는 외교적 반응이라기보다는 ‘국제 정치무대에서의 연기’에 가깝다. 이는 위협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국가적 자기연출이다. 제재는 행동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관계에서 ‘중국이 이제는 이 정도 위치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이 연구는 중국의 제재 행위가 실질적 압박이라기보다, 국제적 위상 확보를 위한 전략적 신호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제재 이해-즉 강요와 처벌의 도구-를 넘어, 제재를 하나의 정치적 언어로 이해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앞으로 중국은 제재의 효과보다는, 제재를 통해 전달되는 ‘정체성과 위치’에 더 큰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제사회에 새로운 고민을 던진다. 중국의 제재를 응징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메시지’를 해독하려는 외교적 감수성이 필요해질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향후 제재를 활용하는 다른 신흥국들의 행태를 비교 분석하는 데도 유용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강대국으로의 여정에 선 국가는 언제나 '힘'과 '이미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며, 제재는 그 줄 위에서 흔들리는 깃발일 수 있다.
논문: https://doi.org/10.1111/pafo.70002
유튜브:
https://youtu.be/_nUrQpxC7x4
중국 제재는 경고장이 아닌 명함이다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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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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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강대국의 지위 신호: 중국의 상징적 제재가 전하는 국가 정체성과 국제 위상

출처: Pacific Focus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