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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변제의 외교적 기원, 일본 외교가 만든 ‘결정’이었다

엄기홍 기자 | 2025.09.08 | 조회 55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아베 시대 일본 외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출현한 산물

출처: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출처: 한국정치외교사논총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 해법으로 ‘제3자 변제’를 단행한 이후 한일 정상회담이 재개되고 한미일 안보협력이 급물살을 탔다. 이 결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연구는 윤 대통령의 ‘주도적이고 대승적인 결정’이 일본 아베·포스트 아베 시대 외교 기조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등장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일본이 취해 온 과거사 배제 전략, 한국 정부의 외교적 대응, 그리고 윤 대통령이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현재 한국 외교가 마주한 구조적 난제를 보여준다.

이 연구는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 해법으로 선택한 ‘제3자 변제’가 독자적인 결정이 아닌, 아베·포스트 아베 시대 일본 외교 전략의 맥락 속에서 등장한 결과였음을 강조한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국제법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며 과거사 문제의 종결을 선언했고, 이후 어떠한 협력도 한국이 모든 책임을 감수할 때까지 유보하는 외교 기조를 유지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투 트랙 외교’를 통해 과거사 문제와 실용 협력을 병행하려 했으나,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검토 보고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은 수출 규제 등 보복 조치에 나섰고, 양국 관계는 안보, 경제, 외교 전반에서 경색 국면에 빠졌다. 스가 정권은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현금화 문제 해결’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외교적 유연성조차 폐기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은 대일 외교의 방향을 ‘미래’로 잡았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계승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한국이 먼저 행동하지 않는 한 변화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고, 정상회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중재에도 일본은 “모든 문제를 한국이 열었으니 해결도 한국 몫”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결국 2023년 3월 제3자 변제를 공식 발표했다. 피해자 배상은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대신하고, 일본 피고기업의 참여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외교부 장관은 “우리의 주도적이고 대승적인 결정”이라 평가했다. 이는 일본이 원하는 해결 방식이었고, 윤 대통령은 “일본이 응하지 않더라도 역사적 평가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연구는 이 결정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첫째, 제3자 변제는 일본 외교가 요구해 온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일본 정부는 공식 입장에서 이를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돌리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둘째, 윤 대통령의 결정은 일본 외교에 실질적인 동력을 제공했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구체적인 대응 없이 ‘기다리는 외교’를 해왔으며, 이로 인해 아베 이후 일본의 대한 외교는 무계획 상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국내외에서 엇갈린 평가를 불러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를 “완전히 무릎 꿇은 결정”이라고 비판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책임 회피와 한국의 일방적 양보라는 구조를 지적한다. 반면에 다른 평가는 윤 대통령의 결정이 한미일 협력의 신속한 복원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실제로 제3자 변제 이후 도쿄 한일 정상회담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회담이 연이어 개최되며, 3국 간 안보와 경제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이 연구는 특히 제3자 변제의 결정 과정에서 윤 대통령 개인의 판단에 주목한다. 검찰 시절부터 관련 민법 판례에 주목해온 윤 대통령은 문제의 법적 구조를 인지하고 있었고, 실질적인 정치적 책임을 감수하면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집권 초기 외교 기조와 비교할 때 상당한 전환이었으며, 한국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안은 형태가 되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 정부가 한국의 이런 결정에도 불구하고 관망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윤 정권이 아닌 다음 정권에서 기존 합의를 뒤집을 수 있다는 불신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전략적 대응보다는 ‘기다리는 외교’에 머물렀고,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결정이 일본 외교의 빈 공간을 채우는 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이 연구는 결론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제3자 변제가 아베·포스트 아베 시대 일본 외교가 만들어 놓은 구조의 산물이자, 그 외교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한다. 일본 외교는 ‘현금화 문제 해결’이라는 구호만 되풀이하며 실질 전략 없이 한국의 반응만을 기다렸고, 윤 대통령의 결정은 그 빈칸을 채운 연료 역할을 했다.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다시 투 트랙 외교를 내세우며 실용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외교의 경직성과 불신은 여전하며, 다시금 ‘출구 없는 미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이 느꼈던 외교의 답답함은 특정 정권이 아닌 구조적 문제일 수 있으며, 새로운 정부가 어떤 균형과 전략으로 이를 돌파할지가 향후 외교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논문: https://doi.org/10.33127/kdps.2025.47.1.35
유튜브: https://youtu.be/fjTbYUNaRlI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