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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건강과 투표의 연결고리…‘종교’는 완충 역할 할 수 있을까

엄기홍 기자 | 2025.10.01 | 조회 159

정신적 건강 격차가 투표율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완화하는 종교의 사회정치적 기능을 실증 분석한 연구

출처: 정치․정보연구

출처: 정치․정보연구

2022년 한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정신적 건강이 나쁠수록 투표 참여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그러나 종교를 가진 유권자에게서는 이 같은 투표 참여 격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는 정신적 건강과 종교, 그리고 투표 참여 사이의 인과 관계를 분석하며, 사회적 약자의 정치적 소외 문제를 해소할 하나의 단서를 제시한다.

정치적 평등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지만, 현실에서는 소득과 자산, 교육 수준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정치 참여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기존 연구들은 이러한 정치 참여의 불평등을 주요하게 다루었으나, 건강 상태?특히 정신적 건강?의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 연구는 정신적 건강의 악화가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저해하며, 종교가 이를 완화할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정신적 건강 상태가 나쁠 경우, 유권자는 선거 정보 습득과 투표소 이동 등에서 더 큰 인지적 및 물리적 부담을 느끼게 된다. 이는 결국 투표에 대한 참여 비용을 높이며, 참여율 저하로 이어진다. 또한 정신 건강 악화는 정치 효능감과 정치 신뢰, 정치 관심도 등 정치심리적 자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이러한 상태가 정치 참여의 불평등을 낳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종교는 이런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집단으로 주목된다. 연구진은 종교의 역할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첫째, 종교는 정치적 효능감과 신뢰를 높이는 정치심리적 자원의 획득 채널로 기능한다. 둘째, 종교 소속감은 집단 정체성을 강화해 투표를 집단에 대한 기여로 인식하게 만든다. 셋째, 종교 지도자와 종교 활동은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동원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이론적으로 종교는 정신적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에게도 투표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자극 요소가 된다. 연구는 2022년 6월 한국 성인 유권자 1,14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이러한 가설을 검증했다. 조사 시점은 대통령선거(3월)와 지방선거(6월)가 근접하게 실시된 해로, 상이한 선거 수준 간 비교를 가능하게 했다. 설문 문항에는 삼성서울병원 우울증센터의 20개 우울증 자가진단 지표를 활용해 정신적 건강 상태를 측정했고, 종교 유무와 투표 참여 여부 등을 함께 분석했다.

분석 결과, 종교가 없는 유권자 사이에서는 정신적 건강이 좋을수록 투표율이 유의미하게 높아졌지만, 종교를 가진 유권자 사이에서는 정신적 건강 상태에 관계없이 높은 투표율이 유지되었다. 구체적으로 종교가 없는 경우 정신 건강의 최하 상태에서의 투표 참여 확률은 89.3%, 최고 상태에서는 93.3%로 약 4.0%p 차이가 나타났다. 반면 종교를 가진 유권자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또한, 선거 수준에 따른 분석에서는 종교의 완충 효과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대통령선거에서는 정신적 건강에 따라 종교가 없는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이 2.6%p 차이를 보였지만, 지방선거에서는 그러한 격차가 관측되지 않았다. 이는 종교가 지방선거에서 역할을 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지방선거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으로 인해 건강에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투표율이 낮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정치적, 사회경제적 통제 변수들도 흥미로운 결과를 보였다. 정치 관심도가 높을수록 모든 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았으며, 정치 이념의 강도는 지방선거에서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자산 규모가 클수록 지방선거 참여율이 높았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이 연구는 종교를 단순한 신앙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자원으로 이해한다. 종교가 제공하는 정치자원과 동원력은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타 사회집단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유사한 메커니즘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연구들도 있다. 따라서 정치적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종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들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정신적 건강 상태가 정치 참여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종교라는 사회적 집단이 정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이는 건강 격차와 정치적 소외 간의 연결고리에 대한 해석을 넓히며, 실천 가능한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데 기여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종단 간 차이, 종교성의 정도, 다른 사회집단과의 비교 등을 통해 보다 세밀한 정책 설계와 민주주의의 포용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논문: https://doi.org/10.15617/psc.2025.06.30.2.1
유튜브: https://youtu.be/dIhz0JOk8gg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