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향 박사는 2000~2020년 한국과 일본의 국회 회의록을 분석해 ‘일·가정 양립’ 정책 담론의 전개 양상을 비교했다. 다국어 언어모델과 통계 기법을 활용해 각국의 합의 속도, 정책 수단과 목표 구성의 차이를 시각화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 책임 확대에 빠르게 합의해 단기적 양적 확대가 가능했으나, 일본은 폭넓은 목표가 병존·충돌하며 합의가 지연돼 점진적 변화에 그쳤다. 이번 분석은 저출생 대응 정책 설계에서 합의 속도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동시에 심화되는 상황에서 ‘일·가정 양립’ 정책은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분야로 자리잡았다. 법적·제도적으로는 고용평등, 보육 서비스, 가족 지원 체계 등이 주요 영역에 해당하며, 이는 여성의 경력단절 방지와 노동시장 참여 확대, 출산율 제고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송 박사는 이 같은 정책이 단순히 재정 투입 규모나 제도 유무로만 평가되기 어렵다고 보고, 정책 담론의 형성과 합의 과정에 주목했다. 담론 제도주의 이론에 따라, 국회에서 정책을 둘러싼 발언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변화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양국 국회 회의록을 대상으로, ‘여성·성평등’ 관련 발언을 추출한 뒤, 다국어 언어모델(XLM-R) 기반 주제 분류, 연도별 대응분석, K-means 군집화를 실시했다. 분석 항목은 크게 고용평등과 보육정책 두 분야였다. 또한 각 군집의 중심 키워드와 대표 발언을 파악해 담론의 의미적 위치와 상호 관계를 도식화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고용평등 담론은 ‘법제 마련 → 여성인력 활용 → 프로그램 세분화 및 경력단절 보완’ 순으로 응집적으로 전개됐다. 국회 내에서 국가 책임 확대에 신속히 합의한 이후, 세부 실행 방안 논의로 빠르게 이동했으며, 경제 활성화 논리와 결합해 여야 간 입장 차이도 축소됐다. 반면 일본의 고용평등 담론은 ‘고용 유연성’과 ‘지역 경제’ 관련 논의가 장기간 우위를 점했고, ‘사회 불평등’ 개입은 짧게 나타나는 등, 담론 간 거리가 멀고 응집력이 낮았다. 이로 인해 국가 역할에 대한 합의가 지연되었고 정책 변화는 점진적으로만 이루어졌다.
보육정책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관찰됐다. 한국은 ‘보육 공공성’을 신속히 합의한 뒤 프로그램 다변화로 확장했으나, 이후 정치적 쟁점화로 인해 가족 중심의 조치가 재도입되는 현상도 발생했다. 일본은 ‘아이 중심’, ‘여성 노동참여’, ‘지역 균형’ 등 다원적 목표가 병존·충돌하며, 합의와 정책 변화 속도가 더뎠다. 두 나라의 담론을 동일 좌표에 시각화한 결과, 한국은 군집이 밀집해 있었고 일본은 분산된 형태를 보였다. 이는 곧 합의 속도의 차이를 반영한다.
이러한 분석은 정책 변화의 속도가 단순히 정치 환경이나 재정 여력의 산물이 아니라, 국회 내 담론 구조와 합의 형성 방식에 의해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신속한 합의로 정책 실행력이 확보되었으나, 단기적·양적 확대에 치중하면서 장기적 구조개혁은 미흡했다. 일본은 완만한 합의로 인해 체감 속도는 느렸지만, 다양한 목표를 포괄하는 논의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는 ‘합의 속도’라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저출생 대응 정책 입안 과정에서 국회 논의 구조와 전략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입법적으로는 정책목표와 수단을 명확히 정의하고, 초기 합의 범위를 설정하는 절차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한 데이터 기반의 담론 분석은 법안 심사와 정책평가 과정에 적용 가능성이 높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는 단기 대응과 장기 비전의 균형, 다원적 이해관계 조정, 그리고 합의 속도의 적정화를 병행하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유튜브:
https://youtu.be/LcDgAl4IX9o
저출생 시대, 한·일 ‘일·가정 양립’ 정책 비교 분석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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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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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회의록 빅데이터로 본 정책 담론 구조와 합의 속도 차이

출처: 송지향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