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최슬아 교수는 학술지 「International Interactions」에 외교 네트워크에서 중재적 위치(broker position)를 차지한 국가일수록 군사적 분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1816년부터 2001년까지 200년에 걸친 외교·분쟁 데이터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이번 연구는, 외교 관계가 평화만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기존 국제정치 이론의 허점을 조명했다.
‘중재자’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평화를 이끄는 긍정적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최슬아 교수는 이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외교 네트워크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은 국가는 단순한 평화 촉진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가진 연결망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전쟁의 문턱을 낮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200년에 걸친 외교 네트워크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중재자 위치(betweenness centrality)가 높은 국가일수록 군사적 분쟁(MID, Militarized Interstate Dispute)을 시작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이때 중재자 위치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국가들 사이를 잇는 위치를 말하며, 이러한 중간 연결 지점을 선점한 국가는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다자 간 협상의 분위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자신이 독점적으로 보유한 외교 채널을 통해 타국을 ‘협력’이라는 명목으로 압박하거나, 교묘한 외교 언술로 군사적 행동의 정당성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과거 프로이센이 유럽 내 중재자 위치를 이용해 영국과 러시아를 설득하고 독일 통일 전쟁을 주도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연구는 또한 군사력이나 강대국 여부를 제외하더라도, 외교 네트워크상에서의 구조적 위치만으로도 분쟁 유발 가능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통제 변수로는 군사력, 인접성, 민주주의 여부, 동맹 유무, 국제기구 가입 수 등을 포함했으며, 중재자 위치의 영향력은 여전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외교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외교는 결코 평화의 보증 수표가 아니며, 때로는 가장 세련된 갈등의 장치일 수도 있다. 이는 우리 외교 정책과 안보 전략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특히 미중 경쟁이 치열한 동북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중재자 위치가 가져올 효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향후에는 외교 네트워크 내 중재자 포지션을 누가, 어떤 전략으로 점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논문:
https://doi.org/10.1080/03050629.2023.2237175
유튜브: https://youtu.be/bnWjE3k-NyQ
외교 중재자의 전략적 힘… ‘중간자 국가’가 전쟁을 부른다?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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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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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는 평화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군사 분쟁을 유발하는 결정적 촉매제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출처: International Interactions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