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철·김현규(한국외대) 연구진은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강화된 중국의 공세적 외교 행태가 단순한 물리적 안보 이익을 넘어서 ‘존재론적 안보’를 확보하려는 내적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했다. 이 연구는 2013~2024년 인민일보에 실린 연설문, 기고문, 인터뷰 263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반복적 서사 속에 내재된 정체성 불안을 조명하고, 중국의 공세 외교를 정체성 회복의 정치로 재해석한다.
이 연구는 전통적인 안보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중국의 외교적 공세를, ‘존재론적 안보(ontological security)’라는 개념을 통해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존재론적 안보는 국가가 외부의 물리적 위협을 넘어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실존적 욕구에 기반해 행동한다는 관점이다. 특히 이 연구는, 중국이 주권 회복에 실패했다는 인식-즉 ‘불완전한 주권’-이 존재론적 불안의 주요 원인이며, 그 해소가 반복적인 내러티브 전략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불완전한 주권’을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주관적 인식에서 기인한 복합적 구조로 정의한다. 중국은 오랜 제국의 중심에서 열강의 침략과 내전, 국공 분열, 대만 문제 등을 겪으며 정체성과 주권 간의 간극을 내면화했다. 이러한 구조적 결핍은 실존적 불안을 유발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서사가 반복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연구는 시진핑 집권기 동안 발표된 263편의 공식 텍스트를 기반으로, ‘중화민족의 부흥’, ‘중국몽’, ‘일대일로’, ‘운명공동체’라는 네 가지 핵심 담론이 존재론적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들 서사는 단순한 선전 수단이 아닌, 정체성 회복을 위한 자아 구성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부흥’과 ‘중국몽’은 과거 영광의 재현과 국가 정체성 통합을 위한 상징적 서사로 기능하며, 시진핑 체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단절된 역사를 극복하고 안정된 자아를 구성하려는 집단적 기억 작업으로 해석된다. ‘일대일로’는 단순한 경제 전략을 넘어, 국제질서 내에서 중국이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로 자리를 옮기려는 정체성 전략이며, ‘운명공동체’는 중국식 가치와 질서를 보편화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질서 설계자로서의 자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서사들이 ‘단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과거 회복과 자아 확인에 집중되었던 담론이 점차 실행 전략, 국제 제도 참여, 규범 창출의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불완전한 자아가 단지 방어적인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려는 외교 전략과 결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 문제는 이러한 서사의 정점으로 제시된다. 중국이 대만을 ‘통일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순한 안보 위협 대응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 정체성을 완성하려는 존재론적 시도라는 것이다. 특히 대만의 지속된 실체성은 중국의 불완전한 주권 인식을 강화하며, 이는 공세적 행태로 귀결된다고 연구는 분석한다. 시진핑 정권은 ‘중화민족의 부흥’과 ‘중국몽’이라는 서사 속에서 대만 문제를 ‘정체성 회복의 핵심 과제’로 상정하며, 평화통일 담론을 전략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평가다.
또한, 이 연구는 단어 동시 출현 네트워크 분석(co-occurrence network analysis)과 사회 네트워크 분석 기법을 접목한 언어 네트워크 분석 방법론을 통해, 정성적 해석에 정량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사의 반복성과 구조, 변화의 방향성을 입증하였다. ‘부흥’, ‘중국몽’, ‘일대일로’, ‘운명공동체’ 각각에 대해 1기~3기 집권 시기별 핵심 키워드를 추출해, 내러티브의 지속과 확장을 계량적으로 분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는 중국의 공세적 외교가 단순한 안보 이익 극대화의 결과가 아니라, 실존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정체성 정치’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리적 생존을 위한 계산을 넘어선 반복적 서사 전략, 즉 자기 서사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고자 하는 존재론적 동기가 중국의 대외행태를 설명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연구는 시진핑 시대 이후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주체성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대만 문제는 실존적 위협이자 존재론적 과제임을 강조한다. 또한, 중국의 내러티브 전략은 단지 대내외 선전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 수행의 실천적 행위임을 드러내며, 중국의 공세 외교를 구조적 불안과의 투쟁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향후 연구과제로는 존재론적 불안의 ‘강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외행태로 연결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 집권기 중국의 외교정책은 ‘정체성 유지’와 ‘질서 재구성’이라는 이중 전략 속에서 강화되고 있으며, 이 과정을 이해하는 데 존재론적 안보 개념이 중요한 분석 도구로 기능할 것임은 분명하다.
논문: https://doi.org/10.14731/kjir.2025.09.65.3.7
유튜브:
https://youtu.be/vsyHdM-ZWrU
시진핑 시대의 공세 외교, '존재론적 불안'에서 읽다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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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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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외 전략을 설명하는 새로운 열쇠, ‘불완전한 주권’과 반복되는 국가 서사

출처: 국제정치논총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