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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확장 시대, 한반도 평화의 조건은 무엇인가

엄기홍 기자 | 2026.02.12 | 조회 7

‘대가치 타격’ 우선 전략과 상호 좌절의 균형…거부보다 응징이 더 안전하다는 제언

출처: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출처: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북한의 핵전력 증강과 비핵화 거부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한반도에 ‘안정적 평화’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다룬 연구가 제시됐다. 이 논문은 북한의 이중적 열세(재래식·핵)와 공세적 교리 변화,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 정밀·감시 능력의 발전이 위기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조건임을 진단한다. 그 대안으로 연구는 북한 전력을 무력화하려는 거부(counterforce) 중심 접근보다, 확증 보복을 보장하는 대가치 타격(countervalue)과 지휘통제(C2) 회복력을 우선하는 전략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냉전기 미·소가 상호 보복능력의 제거 불가능성에서 ‘상호 좌절(mutual frustration)’을 인식하며 군비통제로 이동했던 역사적 경험을 한반도에 적용하되, 지리적 근접성과 의사결정 압축이라는 제약을 고려해 거부 임무를 ‘한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연구는 2025년 유엔총회에서 제시된 단계적 비핵화 구상과, 같은 시기 북한 최고지도자의 비핵화 부정 발언이 교차하는 장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북한은 핵무력을 헌법적 권리로 규정하고 비핵화를 무의미하다고 선언했으며, 핵억제를 ‘국가주권과 안전을 방어하는 힘’으로 동일시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추정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북한은 약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최대 약 90기 생산이 가능한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단거리·중거리·대륙간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잠수함발사체계 등 운반수단의 다변화와 이중용도(재래식·핵) 성격은 재래식 충돌이 핵위기로 얽혀 들어갈 ‘엔탱글먼트’ 위험을 키운다.

2022년 핵무력 정책법 개정은 이러한 전환을 제도화했다는 것이 연구의 판단이다. 억제 실패 시 ‘결정적 승리’를 위한 작전임무를 명시함으로써 조기·제한적 핵사용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2023~2024년 발언에서는 남측을 상대로 한 ‘섬멸’ 위협이 반복됐다. 전술핵 소형화·표준화(예: 화산-31)와 KN-23·KN-24·KN-25 등 플랫폼 확대는 공군기지·항만·지휘시설을 겨냥해 연합 대응을 교란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고체연료 ICBM, 이동식발사대(TEL), 잠수함발사체계(SLBM) 개발은 생존성 강화를 지향하지만, 재진입체 기술과 디젤 잠수함의 취약성 등 한계도 병존한다는 점을 짚는다.

이 같은 위협 진단을 바탕으로 논문은 핵전략 이론의 두 전통을 대비한다. ‘핵혁명’ 관점은 상호 취약성의 인정과 확증 보복이 안정성을 낳는다고 본다. 억제는 거부가 아니라 처벌에 의해 작동하며, 상대의 보복능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선제유인을 키운다는 논지다. 냉전기 상호확증파괴(MAD)는 양측이 생존 가능한 2차 보복능력을 갖춘 뒤에야 안정되었고, 전략방어(ABM)를 제한한 1972년 조약은 상호 취약성을 제도화했다는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정확도·MIRV의 발전이 유혹을 키웠지만, 해상 SLBM 등 생존전력의 완전 무력화는 불가능해 군비통제로 수렴했다는 평가다.

반면, 정밀·감시·AI 발전이 거부전략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반론도 검토한다. 냉전기 미 해군의 대잠감시망(SOSUS)과 이동식 미사일 추적, 걸프전 이후 정밀·투명성 혁명은 생존성의 전제를 잠식해 왔고, AI는 ISR과 표적식별을 기계 속도로 결합해 ‘센서-슈터’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주장이다. 자동 표적 인식·센서융합·자율센서가 이동식 발사대를 추적하는 환경에서는 MAD의 숨쉴 공간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인식 자체가 발사경보태세(LOW)와 ‘사용하지 않으면 상실’ 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연구는 한반도의 구조적 특수성을 강조한다. 북한은 재래식·핵에서 ‘이중 열세’에 직면해 있으며, 체제 붕괴 위험이 감지될 경우 조기·제한적 핵사용의 기대효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게임이론적 논의를 인용한다. 동시에 남측의 재래식 거부전략, 특히 킬체인형 ISR-타격은 지리적 근접성과 시간 압축 속에서 지휘부 참수 공포를 자극해 위기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짧은 탐지·요격 창, 제한된 요격기 수, 불리한 비용교환비는 대규모 거부체계의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을 덧붙인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 논문은 ‘응징 우선, 거부 한정’의 균형을 제안한다. 첫째, 확증 보복과 C2 회복력을 최우선에 둔다. 분산·이동식 발사 플랫폼, 재장전 가능한 고출력 재래식 타격수단(예: 현무-5급), 해상·저피탐 공중 옵션, 경화·다중·중복 통신체계를 통해 ‘피격 후 집행가능성’을 시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재래식 거부임무는 엄격히 경계선을 설정한다. 인간 개입, 다중출처 확인, 권한 문턱, 시간·거리 완충 등 ‘화재방지선’을 두어 일상적 대비태세가 참수 준비로 오인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3축 체계’의 우선순위를 KMPR?KAMD?킬체인으로 재정렬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으로 제시된다. 셋째, 피해경감은 ‘주변부’에 둔다. 민방위·분산·신속복구와 정확도 저하를 유도하는 전자·사이버 수단, 지도부·C2·민간보호에 초점을 둔 계층형 미사일 방어는 보복 신뢰성을 보강하되 ‘완전 방패’ 약속을 피해야 한다는 취지다.

동맹 관리와 신호전략도 핵심 변수로 제시된다. 북의 핵사용 시 ‘정권의 종말’이라는 보복의 확실성과, 선제·참수 수사의 절제를 동시에 분명히 하라는 권고다. 훈련은 참수 브랜드가 아니라 피격 하 연속성·보복 생성 능력을 시연해야 하며, AI 가속 환경에서 지표 오판을 줄일 위기 핫라인을 사전에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동반자조약과 같은 외생 변수는 억제 균형을 흔들 수 있으므로 핵문턱의 명료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경고도 덧붙인다.

종합하면, 냉전의 교훈은 ‘상호 좌절’의 인식이 안정으로 이행하는 경로를 열었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비대칭과 지리적 압축으로 더 취약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의 보복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공유 인식이 유지될 때 1차 사용은 최후의 선택으로 남는다. 기술 발전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오늘, 안정은 거부의 약속이 아니라 응징의 신뢰성과 거부의 자제에서 나온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연구는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다. 상호 취약성을 보존하되, 확증 보복의 집행가능성을 강화하고 거부 임무를 한정함으로써 행동?반응의 나선과 조기 사용 유인을 억제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북한의 전력 증강과 교리 변화가 계속되는 조건에서, 동맹의 압도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무력화나 완전 방어를 장담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안정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재확인한다. 한반도 평화의 조건은 ‘먼저 때릴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보복이 불가피하다는 명료한 신호와 절제된 거부에서 형성된다는 메시지다.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