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준·이후량·이경구 연구팀은 김정은 정권 시기 북한의 대표 매체인 노동신문을 대상으로 민족 담론의 변화 양상을 분석한 결과, 민족 개념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활용되며 점차 ‘국가’와 ‘조국’ 중심의 담론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 연구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의 노동신문 기사 3,097건을 토픽모델링과 네트워크 중심성 분석을 통해 정량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북한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실증적으로 입증한 시도로 평가된다.
북한에서 ‘민족’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통치 개념이었다. 1948년 건국 이후 북한 정권은 ‘수령 중심의 민족’이라는 독특한 민족주의를 전개해왔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시기에는 반미, 반제국주의와 함께 남북통일 담론의 핵심 가치로 ‘민족’ 개념이 강조됐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이 본격적인 핵무력 노선을 추구하면서, 민족 담론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이 연구는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부터 2019년까지 노동신문 기사에서 ‘민족’ 관련 토픽이 어떤 방식으로 출현하고, 어떠한 정치적 사건과 연동되며, 네트워크상에서 어떤 구조적 위치를 점유했는지를 실증 분석하였다. 분석 방법으로는 LDA 토픽모델링을 통해 담론 주제를 추출하고, 토픽 간 공출현 네트워크를 구성한 뒤, 연결 중심성, 매개 중심성, 아이겐벡터 중심성 등 세 가지 지표를 적용해 핵심 개념의 위상을 파악했다.
분석 결과, 김정은 정권 초기에는 ‘민족’ 담론이 평화·통일 담론과 연결되어 높은 중심성을 보였으나, 2016년 7차 당대회와 2017년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민족 담론의 구조적 중요성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특히 ‘민족’과 연결된 토픽들의 네트워크상 중심성은 전반적으로 하락했으며, 대신 ‘국가’, ‘조국’, ‘제도’, ‘인민’ 등의 개념이 새롭게 부상하며 중심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북한이 민족 개념을 고정된 정체성 개념이 아닌, 정치적 수단으로서 유동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연구는 민족 담론의 계절적 순환성, 즉 신년사나 김일성 생일(4.15) 등의 정치적 루틴에 따라 반복 출현하는 양상도 점차 사라졌음을 확인하였다. 이전 시기에는 특정 정치 기념일을 중심으로 민족 개념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으나, 김정은 시기 후반으로 갈수록 이러한 반복성이 약화되었다. 이는 민족 담론이 점차 체계화된 이념틀에서 배제되고, 상황적 대응 논리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나아가 민족 담론의 약화가 한국의 통일 정책에도 시사점을 준다고 분석한다. 민족 동일성을 기반으로 한 통일론은 북한 내부에서조차 설득력을 잃고 있으며, 한국 내 민족 의식의 약화와 맞물려 현실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민족 중심 통일 패러다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다만 저자들은 민족 담론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기보다는, 북한 주민의 감정 구조와 이념 수용성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이 연구는 민족 담론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검증한 드문 시도로, 북한 이데올로기 변화 분석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특히 담론 분석에 정량적 방법론을 접목하여, 민족 개념이 정치적 정당성 확보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국가·제도 중심의 정체성이 이를 대체하고 있음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기여도가 높다.
향후 연구에서는 김정은 이후의 담론 변화나, 대내외 관계 변화에 따른 민족 담론의 재등장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추적이 필요하다. 또한 통일 정책에 있어 민족 감정을 전제한 접근이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보다 제도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접근이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 담론은 여전히 정치적 이벤트에 따라 유연하게 재구성되고 있으며, 이 같은 유동성을 고려한 장기적 정책 구상이 중요해지고 있다.
논문: http://dx.doi.org/10.22872/kanks.2025.29.1.002
유튜브:
https://youtu.be/PSEsBFD5TfY
북한 민족 담론, ‘국가’ 중심으로 전환…정권 전략 따라 유동적 활용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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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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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 시기 노동신문 분석 통해 민족 개념의 퇴조와 국가 정체성 강화 양상 드러나

출처: 북한연구학회보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