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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사회’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나: 김정은 시기 ‘사회관리’ 담론과 기반권력의 재편

엄기홍 기자 | 2026.03.21 | 조회 10

시장화 이후 등장한 사회를 억누르는 데 그치지 않고, 법·통계·행정의 언어로 다시 포섭하려는 북한의 통치전략 변

출처: 한국정치연구

출처: 한국정치연구

김정은 시기 북한 정치에서 주목할 변화 가운데 하나는 ‘국가’의 반복적 강조만이 아니다. 이 연구는 그와 병행해 ‘사회’라는 범주가 북한의 공식 담론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핵심은 단순히 사회라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국가와 구분되는 관리 대상으로 사회를 설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다루려는 통치전략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는 이를 마이클 만의 인프라적 권력(infrastructural power), 즉 기반권력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북한이 시장화와 사회 변동이라는 현실적 도전에 대응해 국가의 침투력과 조정능력을 다시 세우고 있다고 본다.

북한 연구에서 사회는 오랫동안 비공식 영역과 시장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1990년대 경제난과 배급체계의 붕괴 이후 주민들의 생존은 국가의 공식 배급보다 시장과 사적 네트워크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국가 바깥의 비공식 사회가 부상했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일부 연구는 이를 국가 약화의 징후로 읽었고, 또 다른 연구는 국가와 시장이 공모하는 구조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그런 논의만으로는 김정은 시기 공식 담론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북한이 이제는 비공식 영역을 단지 억압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공식적 언어 속에서 사회라는 범주를 다시 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상징적 장면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이다. 김정은은 여기서 ‘광범위한 근로대중이 국가정치의 참다운 주인으로서 국가사회관리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2021년 8차 당대회에서도 ‘국가사회관리’ 사업이 주요 과제로 언급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 북한 매체와 학술지에서 ‘국가사회관리’라는 표현이 그대로 굳어지기보다, ‘국가관리’와 ‘사회관리’가 구분되어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가 더 이상 국가 내부에 흡수된 추상적 총체가 아니라, 별도로 식별되고 관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이러한 변화를 마이클 만의 국가권력 이론으로 읽는다. 만은 국가권력을 전제권력과 기반권력으로 구분한다. 전제권력이 통치자가 피통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을 강제하는 능력이라면, 기반권력은 국가가 사회 전반에 침투하여 실제로 정책과 규칙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연구는 김정은 시기 북한의 변화가 단지 강압의 강화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판독성과 조정 가능성을 높이는 기반권력의 복원과 관련된다고 본다. 북한은 한때 배급제와 조직생활을 통해 주민 일상을 포괄적으로 관리했지만, 경제난과 시장화의 확산으로 그러한 통제의 토대가 약화되었다. 이제 북한은 사회를 다시 보이게 만들고, 측정하고, 분류하고, 규칙화하는 방식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연구의 중요한 발견 가운데 하나는 ‘사회관리’ 개념 자체가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 북한에서 사회관리는 사회주의 제도 운영 방식이나 정치방식에 가까운 의미로 쓰였다. 당시에는 사회를 별도의 실체로 보기보다, 당-국가체제가 이끄는 사회주의 정치의 일부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김정은 시기 다시 등장한 사회관리 담론은 주민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파악하고, 별도의 사회발전계획과 지표를 논의하며, 사회학적 방법론을 관리의 도구로 호명한다. 즉 사회를 단순한 이념적 총체가 아니라 정책적으로 식별하고 관리해야 할 현실적 영역으로 보는 인식이 강화된 것이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사회지표와 통계의 역할이다.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경제지표만으로는 사회의 실제 상태를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고 보며, 사회생활 전반을 측정할 수 있는 별도의 지표 체계를 강조한다. 주민의 계층별·지역별 구성 같은 전통적 통계뿐 아니라 여가시간, 교육, 보건, 주거, 공공서비스, 서비스업 같은 미시적 생활영역까지 정량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논의가 등장한다. 이는 사회를 감각적·이념적으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수치화 가능한 관리 대상으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사회를 숫자로 읽을 수 있어야 예측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어야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관리 담론은 곧 국가의 판독성 확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는 또 북한에서 사회학이 새롭게 재개념화되는 흐름에 주목한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사회학은 오랫동안 부르주아 학문으로 간주되었고, 유물사관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로 독자적 학문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2015년 이후 북한은 사회학을 ‘사회의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관리와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학문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는 사회에 생산관계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질서와 변화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사회는 더 이상 단지 이념적으로 동원될 대상이 아니라, 분석되고 측정되고 조정되어야 할 통치의 객체로 위치 지워진다.

이런 변화는 경제 영역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시장을 완전히 부정하는 대신, 일부 시장 메커니즘과 자금 흐름을 제도 안으로 흡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연구에 따르면 상품의 시장 판매, 시장을 통한 자재 수급, 주민의 기업자금 공급 같은 활동이 일정 범위에서 허용되었고, 주민이 시장에서 축적한 자금이 기업 활동에 들어오는 통로도 양성화되었다. 그러나 이 허용은 자유화와 동일하지 않다. 국가가 가격·거래정보·회계·재정 정보를 등록하게 하고, 검증과 보고 의무를 강화하며, 위반 시 처벌 범주를 상세화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독의 정교화가 함께 진행된다. 과거 비공식 영역에 있던 경제행위를 제도적으로 포섭하는 대신, 그 행위를 국가가 읽고 규제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법의 역할도 결정적이다. 연구는 북한의 사회관리가 단순한 행정적 구호가 아니라 법과 규칙을 매개로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사회주의법치국가’를 표방하며 생활의 다양한 영역을 법적으로 조직하려는 흐름을 강화해 왔다. 경제관리에서는 계약 불이행, 재정 운영, 기업 활동 등에 대한 행정적·민사적·형사적 책임을 세분화했고, 개인의 생활 차원에서는 비사회주의적 행위와 외래문화 수용에 대한 금지와 처벌을 구체화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이 단지 억압 수단이 아니라 통치의 예측 가능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법은 허용되는 사회와 허용되지 않는 사회의 경계를 명시하고, 그 경계 안에서 국가가 인정하는 활동을 제도화한다. 결과적으로 법치의 확대는 자유의 확대가 아니라 국가 개입의 정교화와 안정화로 이어진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북한의 변화를 단선적으로 ‘개방’이나 ‘이완’으로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가 보기에 사회관리 담론의 핵심은 사회를 인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정된 사회를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다시 설계하는 데 있다. 즉 국가는 사회의 존재를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사회의 자율성을 승인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장화와 사회 변동으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현실을 법, 통계, 지표, 사회학, 행정 절차의 언어로 다시 포섭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는 비공식 사회를 단순히 적대하거나 무시하는 전략보다 더 복합적이며, 그만큼 더 지속 가능한 통치기술일 수 있다.

또한 이 논문은 북한의 국가-사회 관계를 이해할 때 억압 대 저항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의 확대가 곧 국가의 후퇴를 뜻하지 않으며, 국가가 사회를 포섭하는 방식 역시 강압 일변도가 아닐 수 있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사회의 부상을 체제 위협으로만 읽지 않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권력의 새로운 토대로 삼으려 한다. 다시 말해 사회는 체제의 균열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재구성 자원이 된다. 이 점에서 사회관리 담론은 북한이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고 있는 징후이며, 그 적응의 방향은 자율화가 아니라 재조직화에 가깝다.

결국 이 연구가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사회를 국가 바깥의 우발적 공간으로 방치하지 않고, 관리와 경영의 대상, 측정과 규율의 대상으로 다시 설정하고 있다. 사회의 가시화, 사회지표의 확장, 사회학의 복권, 법의 정교화, 시장세력의 제한적 양성화는 모두 이 흐름의 일부다. 이는 북한 통치전략이 단순히 더 강해졌다는 말보다, 더 정교해지고 더 제도화되고 있다는 말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정교화의 핵심에는 사회를 통해 작동하는 국가 권력, 곧 기반권력의 재강화가 놓여 있다.

이 연구의 전망은 신중하다. 사회관리의 확대가 주민 삶의 자율성을 넓힐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는 일상에 대한 국가 개입을 더욱 세밀하게 만들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북한이 더 이상 사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는 현실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사회를 공식적으로 호명하고 제도적으로 포섭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 북한 연구는 국가와 사회를 고정된 대립항으로 놓기보다, 국가가 사회를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고, 규정하고, 다시 지배의 장치로 전환하는지를 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바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 논문: http://dx.doi.org/10.35656/JKP.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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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