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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립주의의 두 얼굴: 중국과 러시아 위협 인식에 따른 상반된 외교 태도

엄기홍 기자 | 2025.09.29 | 조회 75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위협 인식 차이가 미국 유권자의 고립주의와 개입주의 태도에 상반된 영향을 미침

출처: 한국과 국제정치

출처: 한국과 국제정치

2020년 미국 전미선거조사(ANES) 자료를 활용한 분석에 따르면,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할수록 미국 유권자는 고립주의 성향을 강화하지만, 러시아를 위협으로 인식할 경우에는 국제 개입을 지지하는 태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연구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 속에서 대중의 위협 인식과 외교정책 태도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며, 정치 성향에 따른 차이까지 드러냈다.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 축 중 하나인 고립주의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중국과의 무역 분쟁, 이란 핵합의 탈퇴, 시리아 미군 철수 등 고립주의적 정책을 잇달아 추진했다. 이러한 기조는 1930년대 보호무역주의 시대를 연상시킨다는 비판과 동시에, 해외 전쟁의 피로감과 경제적 양극화에 분노한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결국 고립주의는 미국 정치 지형에서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유권자 투표 행태를 좌우하는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연구는 기존 문헌이 주로 정치 엘리트의 프레이밍 효과에 주목한 것과 달리, 일반 유권자의 위협 인식이 고립주의적 태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이들에 대한 인식 차이가 외교정책 선호를 어떻게 다르게 이끄는지 분석했다. 중국은 경제적 도전자로, 러시아는 군사적 위협으로 규정되는 가운데, 두 국가에 대한 위협 인식은 미국 대중의 외교 방향에 상반된 효과를 드러냈다.

실증 분석은 8,186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2020년 ANES 자료에 기반했다. 고립주의적 태도는 “미국이 국제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국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문항에 대한 응답으로 측정되었고, 중국·러시아 위협 인식은 각각 5점 척도로 조사되었다. 분석 결과, 중국 위협 인식은 고립주의 지지를 강화한 반면, 러시아 위협 인식은 국제 개입 선호와 상관관계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 성향에 따른 조절효과였다. 진보적 유권자는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더라도 고립주의로 기울지 않고 오히려 국제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중도층은 중국 위협 인식이 강할수록 고립주의를 지지했으며, 보수층은 일관된 패턴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고립주의가 특정 당파나 이념에 종속되지 않고, 위협의 성격과 맥락에 따라 유권자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러시아에 대한 위협 인식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러시아가 군사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으로 인식되면서, 대중은 안보 보장을 위해 국제적 개입을 지지하는 경향을 강화했다. 이는 경제적 위협이 고립주의를 부추기지만, 군사적 위협은 국제주의를 강화한다는 기존 연구의 주장과 일치한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과 2020년 대선 개입 논란 등 당시 특수한 상황이 위협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연구는 연령, 학력, 소득, 인종 등 사회경제적 변수도 함께 고려했다. 분석 결과, 연령이 낮고 소득이 낮을수록 고립주의적 태도가 강했으며, 대학 교육 이상을 받은 집단에서는 국제주의 성향이 뚜렷했다. 또한 비백인은 백인보다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으며, 정치관심도가 낮을수록 고립주의 성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과거 연구와 대체로 부합하지만, 경제 평가가 긍정적일수록 고립주의가 강화된다는 점은 기존 통설과 다른 양상으로 주목된다.

이 연구는 미국 유권자가 중국과 러시아를 동일한 위협으로 보지 않고, 각기 다른 성격의 도전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중국은 점진적이고 경제적인 도전자로, 러시아는 즉각적이고 군사적인 위협으로 간주되면서, 이에 따라 고립주의와 국제주의라는 상반된 태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미국 외교정책의 향방이 단순히 보수-진보의 이념 대립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특정 위협의 성격과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위협 인식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세분화하여, 각 유형이 유권자의 외교정책 태도에 미치는 차별적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이 대중의 위협 인식과 외교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심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 고립주의의 부상과 변형은 향후 대선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과 러시아를 둘러싼 대중적 인식의 변화는 외교정책 결정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다.

논문: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2269803
유튜브: https://youtu.be/jP8RWTqvP18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