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원 교수(고려대)는 최근 게재된 논문에서 정서적 양극화의 시대에 당파성을 단순한 민주주의의 병리로 보는 시각을 비판하며, 이를 집단적 자기저작의 가능성으로 재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 연구는 당파성을 사회적 정체성과 정치적 정체성의 교차점에서 형성되는 정치적 실천으로 이해하고, 민주적 제도를 통해 이질적 정체성을 조정하는 핵심 자원으로서 그 기능을 조명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서적 양극화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정치환경에서 당파적 대립은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서, 인종, 계급, 지역, 종교 등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포괄하는 '거대 정체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정렬된 정체성은 시민의 자율적 판단 능력을 약화시키고, 타협 불가능한 정치 문화를 양산하는 병리적 양상을 보인다.
이 연구는 당파성을 ‘사회적 당파성’과 ‘정치적 당파성’으로 구분하면서, 후자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실천적 자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당파성은 소속감과 인정욕구에 기반하여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며, 시민을 ‘신념 수행자’로 전락시킨다. 반면 정치적 당파성은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형성되며, 민주주의를 집단적 자기저작의 과정으로 재해석하는 실천으로 기능한다.
정치적 당파성은 단순한 정당 충성심이나 감정적 결속이 아니라, 시민들이 각자의 경험과 가치를 언어화하고, 이를 정당 및 제도와 상호작용하며 공적 서사로 구성해 나가는 실천이다. 이 개념은 민주주의를 공존의 윤리로만 이해하는 기존 입장을 넘어, 상이한 시민들이 공동의 규범을 구성하는 능동적 정치로 자리매김한다. 여기서 핵심은 교차 정체성을 고려한 제도적 설계이다. 예컨대 세대 간 갈등 문제를 다룰 때, 세대 내 경제적·성별·직업적 차이를 고려하여 정책을 구성해야 실질적인 사회통합이 가능해진다.
또한 정당 내부의 내적 다원주의는 정치적 당파성이 민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당내 다양한 의견과 정체성이 공존하며 숙의적 논쟁과 합의가 제도화될 때, 시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비판적 판단과 책임 있는 지지를 병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당파성을 고정된 소속감이 아닌, 조율 가능하고 반성 가능한 정치적 태도로 전환시키는 기반이 된다.
이 연구는 나아가 정치적 당파성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 자체를 핵심 정체성으로 내면화’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상위정체성(예: 한국인)의 호명이 아니라, 시민 간 상호 책임과 애착을 중심으로 한 감정적·서사적 유대를 형성하자는 제안이다. 이를 통해 정치적 당파성은 반대자에 대한 적대가 아니라, 정치적 동료로서의 존중과 응답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게 된다.
이 연구는 정서적 양극화의 병리를 개인의 감정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당파성이 제도적으로 구조화되는 방식의 문제로 진단한다. 따라서 단순한 시민 교육이나 감정 조절이 아니라, 제도 설계와 정당 구조의 변화, 공론장 복원을 통해 정치적 당파성을 재구성하는 것이 민주주의 회복의 핵심 과제임을 제시한다. 특히 정당이 교차 정체성을 포용하고, 시민이 자신의 정치적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파성은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협력의 자원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주어진 의지를 실현하는 체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민이 공동의 규칙과 가치를 구성해나가는 서사적 실천이다. 정치적 당파성은 바로 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토대이자 감정적 에너지로서,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갱신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논문: https://doi.org/10.34164/injede.2025.2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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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성, 분열인가 협력인가: 정서적 양극화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길
엄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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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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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동일시를 넘어, 집단적 자기저작으로서의 정치적 당파성 재구성
출처: 비교민주주의연구
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