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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유주의의 핵심은 ‘반극단주의’와 ‘공존의 사상’

엄기홍 기자 | 2025.11.19 | 조회 96

전후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 재조명되는 김대중 사상의 지적 기반과 정치적 의미

출처: 한국정치연구

출처: 한국정치연구

해방 이후 한국 정치의 중심을 지켜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을 전후 자유주의(post-war liberalism) 전통 속에서 재해석한 새로운 연구가 제시됐다. 이 연구는 김대중의 사상적 핵심이 단순한 민주주의·인권 담론을 넘어,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공존을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윤리에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 연구자는 그의 옥중사색, 독서, 정치적 실천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왜 김대중이 ‘절제된 자유주의자’로 규정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에서 김대중은 민주주의·평화·인권을 강조한 정치 지도자이자, 동시에 드물게 ‘사상가’로 함께 평가된 인물이다. 하지만 기존 연구 다수는 민주주의나 화해, 인권에 주로 초점을 두어, 정작 그의 자유주의적 지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이 연구는 이러한 공백을 문제 삼고, 김대중의 정치적 여정과 옥중사색이 어떻게 ‘반극단주의’와 ‘공존’이라는 핵심적 사유로 수렴되었는지를 밝혀낸다.

김대중은 정치 입문 초기부터 국가·민족 중심의 집단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중심 가치로 강조했다. 1950년대부터 그는 극단적 민족주의나 독단적 혁명 노선을 경계하며 “국민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신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이후 군부독재 시절에도 유지되었고, 그는 재야운동의 과격성을 비판하며 국민의 지지 없이는 어떤 이념도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는 이러한 태도가 김대중의 자유주의적 감수성의 기초였다고 분석한다.

그의 사상적 성숙은 긴 옥중생활 동안 본격화되었다. 김대중은 6년에 가까운 수감 기간 동안 600권에 이르는 책을 읽으며 정치·철학·경제·역사 전반을 탐독했다. 특히 니부어(Reinhold Niebuhr),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아롱(Raymond Aron) 등 전후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니부어의 ‘기독교적 현실주의’는 악에 대한 현실적 대응과 동시에 독선과 극단을 경계하는 태도를 강조했는데, 이는 김대중이 독재정권에 맞서면서도 미움과 복수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정치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갤브레이스의 경제사상 또한 그의 ‘경제민주주의’ 구상에 직접적 영향을 주어 복지·균형·책임을 중시하는 정책기조를 가능하게 했다.

이 연구는 김대중 사상의 정수로 ‘반극단주의’를 제시한다. 그는 극단은 극단을 부르고, 적대적 정치가 반복되면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점을 여러 글과 일기에서 강조했다. 1970년대 연금 시절 그는 극단주의가 반드시 극단적 반작용을 부른다며 대립과 배제의 정치는 파국을 초래할 뿐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중이 정치보복 반대, 전·노 대통령 사면 합의, 여야 대화·타협 강조 등 일관된 행보를 보인 것도 이러한 철학에 기반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개혁’을 강조하면서도 ‘혁명’을 경계했다. 해방 직후 좌우합작을 지지했고, 냉전기의 극단적 이념 대립을 비판했으며, 남북 관계에서도 적대가 아닌 공존·대화를 강조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이러한 공존의 철학이 정책으로 구현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그는 남북문제를 다루면서 “뜨거운 정열과 얼음 같은 이성이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감정적 민족주의와 냉전적 적대 모두를 경계했다.

이 연구는 김대중의 자유주의가 단순한 사상적 이상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된 실천적 윤리였음을 강조한다. 그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대비되는 두 요소를 조화시키려 했다. 즉 원칙은 지키되, 방식은 유연하게 선택해 국민의 지지 속에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이는 베버(Max Weber)의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조화를 강조한 정치관과도 유사하다고 연구는 평가한다. 다만 집권 이후 일부 사례, 예컨대 대북송금 사건이나 의원 ‘꿔주기’ 논란 등은 그가 중시한 정치윤리와 충돌하는 측면을 남겨, 그의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긴장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김대중의 자유주의를 ‘절제된 자유주의(tempered liberalism)’로 규정하며, 핵심은 극단의 유혹을 거부하고 공존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장하려 했던 정치윤리라고 분석한다. 민주주의의 규범과 절제가 무너지고 혐오가 정치의 언어가 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김대중의 자유주의는 정치적 책임과 공동체적 윤리를 다시 성찰하게 하는 지적 자원으로 평가된다.

이 연구는 김대중의 사상이 단순한 역사적 평가를 넘어 현재적 의미를 지닌 자유주의 전통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반복되는 극단주의, 진영정치, 혐오의 언어는 김대중이 경계했던 위협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의 자유주의는 권위주의를 넘어선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요청되는 정치윤리이며, 한국 민주주의가 다시 균형과 공존의 방향을 찾기 위해 참고해야 할 실천적 지침으로 평가된다.

논문: http://dx.doi.org/10.35656/JKP.34.3.9
유튜브: https://youtu.be/hCWBB9nyu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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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