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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과가 민주주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제도적 책임 구조가 결정한다

엄기홍 기자 | 2025.12.08 | 조회 27

책임의 명확성이 높을수록 경제 지표가 시민의 민주주의 평가에 강하게 반영된다는 연구 결과

출처: European Political Science Review

출처: European Political Science Review

경제 상황이 민주주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기존 연구는 국가 간·시기 간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이 연구는 이러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의 명확성(Clarity of Responsibility, CoR)’ 개념을 적용해 분석하며, 책임 구조가 명확한 국가일수록 경제 지표가 시민들의 민주주의 평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연구는 1990년 이후 30개 민주주의 국가의 자료를 통해 경제 성과와 민주주의 만족도 간 관계를 종합적으로 검증한다.

경제가 정치적 지지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정치 분야에서 오랫동안 핵심 주제로 다뤄져 왔다. 경제 성과가 좋을 때는 정권과 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증가하고, 경제가 침체될 때는 시민의 불만이 높아진다는 논리는 다수의 실증 연구에서 확인되어 왔다. 그러나 민주주의 만족도(Satisfaction with Democracy, SWD)를 기준으로 한 연구에서는 경제 지표가 일관된 영향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에서는 경제 성장률이 SWD를 높였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유의미한 영향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 연구는 이러한 차이가 경제 변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성과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시민이 얼마나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가, 즉 책임의 명확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책임의 명확성(CoR)은 국민이 정책 결과의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의미한다. 단일정당 정부·대통령 중심제·다수 의석 확보 구조 등에서는 정책 성과의 책임이 비교적 한정된 정치 주체에게 귀속된다. 반대로 연립정부·소수정부·권력 분산 구조 등에서는 여러 정치 행위자의 책임이 혼재되기 때문에 시민이 성과의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다. 이 연구는 이러한 정치 제도적 구조가 경제 성과가 민주주의 만족도에 반영되는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연구는 기존 연구들이 CoR을 단편적 변수로 다룬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도적 규칙(Institutional Rules)과 권력 규칙(Power Rules)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 지수를 사용했다. 이는 정당 체계의 파편화, 다수·소수 정부 여부, 집권 기간, 정부 구성 방식, 경제 개방성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책임 귀속의 현실적 구조를 포착하는 방식이다. 누적지수 방식은 변수를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여러 제도적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실제 정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중요한 기여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GDP 성장률과 실업률이 SWD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기초 모형에서는 GDP 성장률은 SWD를 높이고, 실업률은 SWD를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연구의 핵심은 경제 성과의 효과가 CoR 수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파악하는 데 있다. CoR과 경제 변수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분석 결과, 책임 구조가 명확할수록 GDP 성장률의 긍정적 효과가 확대되었고, 실업률의 부정적 효과는 더욱 강화되었다. 반면 CoR이 낮은 정치 체제에서는 동일한 경제 변화가 SWD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상호작용항의 분석에 따르면, CoR이 높은 국가에서는 경제 성장률 상승이 SWD 증가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실업률 상승은 SWD를 크게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결과는 경제 성과를 정부의 운영 능력에 대한 평가 지표로 받아들이는 시민의 태도가 제도적 책임 구조에 의해 크게 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민이 정책 결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때, 경제 상황은 더 직접적으로 민주주의 운영 평가에 반영된다.

또한 실업률의 SWD 감소 효과 역시 CoR이 높을수록 더 크게 나타났다. 실업 증가가 정부의 무능으로 인식되는 구조에서는 시민의 불만이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낮은 평가로 연결된다. 반면 책임이 분산된 체제에서는 실업률 상승이 발생하더라도 특정 주체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SWD 변화가 제한적이다.

연구는 SWD를 단순히 민주주의 이상에 대한 추상적 평가로 이해하는 접근의 한계를 지적한다. 경제 성과의 효과가 제도적 책임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SWD가 실제로는 민주주의 운영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민은 경제 상황을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에 대한 신호로 해석하며, 이러한 평가가 민주주의 제도 전반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제시하는 CoR의 중요성은 민주주의 지표 해석에도 함의를 갖는다. 경제가 좋음에도 SWD가 낮거나, 경제가 나쁨에도 SWD가 크게 하락하지 않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경제 자체가 아니라 제도적 책임 구조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SWD를 국가 간 비교 지표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제도적 책임 구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 연구는 기존 연구가 주로 유럽 국가에 집중한 한계를 넘어, 아시아·오세아니아 국가를 포함해 분석 범위를 확대했다. 다양한 정치·경제 구조를 가진 국가들에서도 CoR이 유사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확인하며, 제도적 책임 구조가 민주주의 태도 형성의 핵심 요인임을 보편적으로 보여준다.

이 연구의 결과는 정책적 시사점도 갖는다.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하는 제도 설계?예컨대 연립정부 책임 규정 강화, 정치적 권한 분산의 투명화, 집권 구조 단순화?는 경제 성과와 민주주의 평가 간 연결고리를 강화해 시민의 정치 신뢰 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연구는 경제 성과와 민주주의 만족도 간의 관계가 일관되지 않게 나타난 이유를 제도적 책임 구조의 차이에서 설명한다. 경제 지표의 효과는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책임 주체를 명확히 식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에서만 강하게 나타난다. 앞으로 민주주의 평가 연구에서는 CoR을 핵심 설명 변수로 포함할 필요가 있으며, 정책 결정자에게는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된다. 이는 민주주의 운영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논문: https://doi.org/10.1017/S1755773925100179
유튜브: https://youtu.be/hLhSlVEJR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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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홍 기자 | theaipen.official@gmail.com